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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닝햄 - 조선 최초의 고급택시

커닝햄 - 1920년대 조선 최초의 고급택시

 

2015년, 우리나라에는 모범택시 보다 윗 단계인 고급택시라는 것이 도입이 되었습니다.

 

일반 서민들이 좀처럼 타기 힘들었던 최상위급의 고급승용차를 택시로 이용할 수 있게 된 것 입니다.

 

물론 기존 모범택시보다 요금이 더 비싸지만 검은색 정장 차림을 입은 기사의 도어 서비스, 짐꾼 서비스 등 일반적인 택시 이상의 서비스를 자랑하였습니다.

 

일반 택시정류장이나 길거리에서는 이용이 불가능하며, 전화나 인터넷으로 사전예약을 해야 이용할 수 있는 고급택시

 

이런 고급택시 개념이 처음 도입된 것은 2015년이 처음이 아닙니다.

 

지금으로 부터 100여년 전인 1920년에도 조선에 고급택시가 있었습니다.

 

바로 조선최초의 고급택시 '커닝햄' 입니다.

 

커닝햄

커닝햄은 1900년대 출시된 미국의 고급자동차로 유럽이나 미국에서 장의차로 사용되던 차 입니다.

 

1900년 전후로 미국에서 전기모터로 추진하는 장의차가 최초로 등장했고, 1907년에는 세계 최초의 내연기관 장의차가 등장합니다.

 

이때만 해도 엄청난 부자가 아니고선 일반 자동차도 사기 어려운 시대였지만, 자동차가 폭발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1920년대부터는 미국과 유럽에서 장의차의 사용이 보편화되기 시작했습니다.

 

담정림의 미카도자동차부

우리나라에는 1920년대 중반 서울의 택시왕이라 불리웠던 담정림이란 사람이 '커닝햄'을 택시 용도로 들여왔습니다.

 

담정림이란 인물은 화교 출신으로 1890년대 말에 우리나라에 올라와서 중국과 무역을 하며 큰 돈을 벌었던 중국재벌 입니다.

 

돈을 얼마나 많이 벌었던지 그는 서울 명동일대와 을지로 입구에 수십 채의 집을 가지고 동순태옥이 무역품 점포를 경영하고 있었습니다.

 

담정림은 자동차영업을 하면 더 큰 돈을 벌수 있다는 생각에 미카도 자동차부라는 택시 회사를 설립하였습니다.

 

민규식의 한성택시

1920년대 초기만 해도 서울 장안에는 10여 곳의 자동차 회사가 생겨 기껏 2~3대 정도를 가지고 영업을 하고 있었으나 그중에서 가장 큰 회사는 당대의 서울 갑부라던 민영휘의 아들 민규식이 경영하던 '한성택시' 였습니다.

 

민규식은 자그마치 20대의 자동차로 서울 종로에서 대절택시업을 해 이를 따라잡을 자가 없었다고 합니다.

커닝햄

 

담정림의 미카도 자동차부 역시 한성택시 비해 너무 초라했고 생각보다 수익이 없자 민규식을 제치는 방법을 생각하던 끝에 정동에 있는 모리스상회를 통해 최신형 미국제 고급차 '커닝햄'을 들여 왔습니다.

 

당정림은 커밍햄을 대당 2만원식 주고 한꺼번에 10대를 들여와 서울 장안에 풀어놓았고 소문이 나서 담정림의 미카도 자동차부는 전화통 벨소리가 차츰 바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참고로 당시 쌀 한가마 가격은 14원 50전 이었습니다.

 

담걸생의 커닝햄

담정림이 당시 큰 라이벌인 한성택시를 제치기 위해 들여온 최고급차 ‘커닝햄’은 큼직한 차에 실내 좌석이 마치 응접실처럼 포근하고 쿠션이 좋을 뿐만 아니라 속력도 빠르고 운전하기가 편리해 인기는 순식간에 서울 장안으로 퍼졌습니다.

 

이어 미카도 자동차부의 사장이 된 담정림의 아들 담걸생은 고급차 도입으로 끝내지 않고 역사상 처음으로 신문에다 광고를 냈습니다.

 

“춘풍이 점차 화창한 시절에 여행이나 혹은 공원과 교외에서 신선한 공기를 흡수하시고 천연한 경색을 감상코자 하시는 신사 숙녀 제위께서는 미카도 자동차부의 미려 경쾌한 신식 고급자동차를 일차 필승하시압… 전화본국 3433.”


이렇게 기발한 아이디어로 손님을 끌게 된 담걸생은 2년 후 다시 ‘커닝햄’ 10대를 더 들여왔는데 이 차가 그야말로 최신식이었습니다.

 

이전까지 우리나라에 들어온 자동차는 시동을 걸려면 앞에서 엔진에다 스타팅이라는 ㄴ자로 두 번 꼬부라진 긴 쇠막대기를 꽂아 힘껏 몇 바퀴 돌려주어야 시동이 걸렸습니다.

 

이 때문에 운전수 옆에는 정비사 겸 스타팅 막대기를 돌려 주는 조수가 항상 따라다녔습니다.


그런데 새로 들여온 '커닝햄'은 이 쇠막대기가 필요없었습니다.

 

운전석바닥에 튀어나온 단추만 발로 밟으면 저절로 시동이 걸렸으니 참으로 신기한 자동차요 최신식 택시였습니다.

 

결국 서울 장안에 내놓으라는 VIP들에게 큰 인기를 끌어 미카도자동차부의 전화통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울려댔으며 미카도자동차는 큰 돈을 벌게 되었습니다.

 

특히 자동시동기를 달고 나온 ‘커닝햄’ 은 조수가 필요없어 인건비를 절약할 뿐 아니라 조수 대신 승객 한 사람을 더 태울 수 있어 수입이 과거보다 더 올랐던 것 입니다.

 

결국 미카도자동차부는 1920년대 말 서울택시의 70%를 장악하며 서울의 자동차왕이 되었습니다.